나이를 세는 방식을 ‘만(滿) 나이’ 셈법으로 통일하는 ‘만 나이 통일법’(개정 행정기본법·민법)이 오는 28일 시행된다. 만 나이 통일법은 ‘나이는 법령 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 나이로 계산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2023년 6월 28일부터는 공문서·사문서에 나이가 적혀 있는 경우, 나이를 세는 방식에 관해 별도로 정해놓지 않았다면 모든 나이 표기는 만 나이 셈법으로 센 것으로 해석된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 무엇이 바뀌나 자세히 알아보자.
당신이 계약서에 적는 30세, 28일부터 만 나이로 간주
정부가 나이 세는 방식을 만 나이로 통일하려는 것은, 국내에서 나이 셈법으로 ‘만 나이’, ‘연 나이’, ‘한국식 나이’가 혼용되고 있고, 이에 따라 법적 분쟁이 벌어지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양유업 임금 피크제 분쟁’이다. 남양유업 노사는 2010년 정년을 ‘55세’에서 ‘56세’로 늦추면서 임금 피크제를 도입했다.
이후 2014년 정년을 60세로 다시 늦추면서 각 근로자에게 임금 피크제에 따라 임금 삭감을 적용하기 시작하는 시점도 늦추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때 임금 피크제를 적용하는 시점에 관한 표기 ‘56세’를 두고, 이를 ‘만 55세’와 ‘만 56세’ 중 어느 쪽으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노사 간에 이견이 생겼다. 이견은 법적 분쟁으로 비화돼, 1심과 2심, 대법원이 각기 다른 판결을 내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2023년 6월 28일부터 '만 나이' 통일
현재도 법적으로는 ‘만 나이’ 셈법이 기본이지만, 일부 법령은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숫자를 나이로 간주하는 ‘연 나이’ 셈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 나이’ 셈법조차도 민간에서 널리 쓰이는 ‘한국식 나이’와 달라서 혼란이 생겼다. 한국식 나이 셈법은 사람의 나이를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치고, 해가 바뀔 때마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한 살씩 먹는 방식인데, ‘연 나이’에 1을 더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낸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을 총괄하는 법제처는 현재 법령상 ‘연 나이’ 셈법을 쓰고 있는 제도들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 나이’ 셈법을 쓰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28일 만 나이 통일법 시행으로 당장 현행 ‘연 나이’ 셈법을 쓰는 제도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는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현행 연 나이 셈법대로 결정된다. 어린이들은 ‘만 7세 생일이 있는 해의 3월 1일’에 입학하게 된다. 올해 3월 1일에는 2016년생이 생일과 관계없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내년 3월 1일에는 2017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술 담배 구입과 초등학교 입학은 연 나이로
술·담배를 살 수 있는 시기도 현행 연 나이 셈법대로 정해진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술·담배를 사려며 연 나이가 19세 이상이어야 한다. 즉 올해엔 2004년생부터, 내년에는 2005년생부터 생일과 관계없이 술·담배를 살 수 있다. 병역 판정 검사를 받는 시기도 연 나이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병역법에 따라, 올해에는 2004년생, 내년에는 2005년생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공무원 시험 응시 자격도 연 나이를 기준으로 부여된다. 공무원 임용시험령에 따라, 올해는 8급 이하 공무원 시험은 2005년생부터, 7급 이상 공무원 시험이나 교정·보호 직렬 공무원 시험은 2003년생부터 응시할 수 있다.
내년에는 각각 2006년생, 2003년생부터 응시가 가능해진다. 현재도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제도들은 만 나이 통일법 시행 이후에도 당연히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선거권은 선거일을 기준으로 만 18세 이상에게 부여되고, 국민연금법에 따른 노령연금과 기초연금법에 따른 기초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도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과 무관하게,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이 달라지지 않는다. 고령자고용법에 따라 근로자 정년도 ‘만 60세 이상’으로 유지된다. 노인복지법에 따른 교통요금이나 공공시설 이용 요금 할인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만 65세 이상’에게 제공된다.
민간에서 ‘한국식 나이’를 쓰는 것이 만 나이 통일법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 간 계약서나 회사 내규, 복약지도서 등 민간 문서에 표기된 나이도, ‘만 00세’처럼 ‘만’ 자가 따로 표기돼 있지 않아도 만 나이를 적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나이 세는 방법에 관해 당사자들 간에 별도의 합의가 있었거나, 해당 문서에 나이 세는 방법에 관한 별도 언급이 있었다면, 그런 합의나 언급이 우선이다.
금융상품 가입 시 변화는
결론부터 얘기하면 보험을 제외한 은행·카드 등 대부분 금융권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이미 만 나이를 적용해 금융 상품 등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달 출시된 은행권 청년도약계좌는 만 19~34세 이하를 가입 대상으로 설정했고, 청년 전세 대출 역시 만 34세 이하가 대상이다. 각 은행과 카드사는 홈페이지나 상품 설명서 등에서 나이 표기만 ‘만 19세’에서 ‘19세’로 일괄 변경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은 만 나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보험에 가입할 때는 만 나이나 한국 나이가 아니라 ‘보험나이(만 나이±1)’가 적용된다. 보험나이란 계약일 기준으로 만 나이를 개월 단위까지 계산해 6개월 미만이면 끝수를 버리고, 6개월 이상이면 끝수를 1년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만 나이가 적용 안 되는 분야는
예컨대 1996년 10월 9일생인 A 씨와 1997년 4월 9일생인 B 씨가 오는 28일 보험에 가입할 경우 A 씨는 26년 8개월, B 씨는 26년 2개월이 된다. 이때 A 씨는 끝수가 6개월 이상이라 보험나이가 27세가 되고, 끝수가 6개월 미만인 B 씨는 26세가 되는 것이다. 보험료는 통상 나이가 많을수록 비싸지기 때문에 만 나이 기준으로 6개월이 지나기 전에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 다만 보험 상품에 따라 만 나이를 적용하거나 개별 약관에서 나이를 정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가입 시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선 “보험도 복잡한 보험나이 대신 만 나이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