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인간관계 리더십의 목표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경제구조 사회에서 기성세대들은 전통적 노동 방식의 땀과 노력으로 개인의 자산을 획득하였다면, 인식전환과 사회변화에 따른 젊은 세대들의 경제력 성공 목표는 빠르고 획기적인 디지털 시대의 노동 방식으로 전환되어 청춘시절의 낭만이 아닌 경제적 자유라는 생존의 목표가 되었다. 물질 만능의 시대에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 인지, 또한 물질적 풍요를 위해 경쟁으로 치닫는 현대인에게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왜 인간관계 리더십에 그 해답이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이포 스팅을 올린다.
자본주의 (Capitalism)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자본과 임금노동을 통해 얻어진 생산활동으로 자본가 또는 기업가가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제도 또는 경제구조를 지칭하는 자본주의는 그 목표가 이윤추구이며 목표를 향한 현실은 냉혹하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이나 회사나 단체는 투쟁적이다. 누군가의 잃음이 누군가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내가 잃어버린 행운이 누군가의 행운이 되니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삶의 목표가 물질이 되는 경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야수의 본능에 자본주의는 부합하는 것이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사소한 행복이 주는 큰 기쁨을 잊고사는 우리에게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어디에 있을까? 이데올로기나 무능한 대중영합 주의자들에 의해 치우쳐진 탐욕을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윤리나 사회적 모성 주의(Social maternalism)로 창조적 파괴를 통한 실용주의로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즉, 자본주의의 산물인 기업은 자신의 고객과 노동력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며 자본주의는 이익 추구라는 성과적 목표에서 나아가 윤리적 자본주의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든다.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부럽게 만든다. 그러나 단도 직업적으로 물질만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거듭해 오면서 인간의 본질적 질문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물질적 성공이 열심히 일하는 동력이 되어 언젠가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인간의 희망은 경제이론의 바탕이다. 경제적 자립 또는 경제적 자유를 위한 목적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조건이지만 자본주의는 그 목표를 쉽게 마련해 주지 않는다.
성공적인 사회는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느끼며 번영을 누리면서 살게 하지만 동시에 탐욕적인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선물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의 오아시스가 주는 목마름의 해소를 즐기며 함께 가야 한다. 아담 스미스가 주목했듯이 윤리적 동기를 가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존중받고 싶어 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한다. 인류는 역사를 이어오며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집단과 협력을 이룬 관계이며 인간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소속과 협력, 존중의 갈망이 없는 경제적 물질의 풍요만을 누리는 이기적인 인간에게 자본주의는 권리에 따른 의무를 물을 것이다. 사회적 협력관계로 번영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가정이나 직장이나 공동체에 기여해야 할 더 높은 단계의 고매한 대가가 필요하며 그 질문은 곧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이 지점에서 더 늦지 않게 우리는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를 찾아야 한다. 인간관계 리더십이 지향하는 본질적인 목표와 동일한 곳, 그곳에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존재한다.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인간관계 리더십의 목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시장은 인간의 공동체적 삶의 현장이 되었고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인간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찾는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개개인의 자유와 물질적 풍요가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를 내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물질 만능주의의 거대 담론이 아닌 우리는 작은 공동체로부터 시작하는 인간 개개인의 관계에서부터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를 찾는 길은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인간은 자본주의 시장을 벗어나 혼자 살 수 없는 대 전제하에 행복을 담보하는 관계의 문제 즉, 인간관계 리더십의 존재 이유를 애써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을 추구하는 이유에 다가갈수록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그 물질이 필요한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를 찾는 길의 유일한 방법은 삶의 매뉴얼인 인간관계 리더십에 그 길이 있다.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물질과 비교될 수 없는 인간관계 리더십
인간의 가치 척도는 본질과 닿아있다. 인간의 본질은 물질의 개념이 아니다. 경제적 목표를 숭배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이룬 경제적 성공은 언제나 모자라고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며 더 많은 경제력을 가지기 위해 더 경쟁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인간의 물질적 욕망은 어느 지점에서 끝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인간이 원하는 행복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다 성공하기 위해 치르는 전 과정이다.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우리 삶의 전 과정에 함께 있으며 그곳엔 인간이 함께하고 있다.
성공에 이르는 길에는 모든 관계가 서로 작동하고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인간관계 리더십은 물질적 성공의 크기를 더욱더 배가시키거나 반대로 물질적 성공의 크기를 줄어들게 하거나 아예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돈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는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인간관계 리더십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의 문제이다. 돈으로 인간의 가치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우리에게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치, 그것은 관계의 총집합체인 인간관계 리더십의 오아시스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의 오아시스이다.
인간의 가치를 단순히 전문성이 가진 기능적 능력으로 비교할 수 없다. 물질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본질적 가치로 볼 때 인간의 가치는 물질로 비교될 수 없다. 모든 게 수치로 계산되는 자본주의에서 인간관계 리더십은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줄 수 없는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궁극적 대답은 '물질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라는 동시적 질문이며, 삶의 따뜻함과 삶의 쉼표가 있는 인간관계 리더십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경쟁과 물질의 만능인 시대, 목마른 자본주의의 오아시스는 오직 인간관계 리더십의 상호작용으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